아이폰 11을 쓰면서

12, 13, 14가 발표되고 수많은 리뷰들과 주변인들의 사용 모습을 보며 기변욕이 끓어오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14 발매 때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

당시엔 이미 11의 배터리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던 터라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헤비유저가 아님에도 틈만 나면 충전해야 하는 불편함이 너무 커서

이제 좀 업그레이드를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가던 참인데

발표된 14를 보니 생 듣도보도 상상도 못했던 Dynamic Island 라는 게 참 신통해 보였고

사진과 비디오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한층 좋아진 카메라 기능도 무척이나 끌렸다.

 

그래서 이제 바꿀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서고

어느 정도 가격이 안정되면 적당한 조건을 제시하는 곳에서 14 Pro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제나 저제나 하며 틈틈이 관련 소식들을 관심있게 접하고 있던 중

아이폰 차기작 15에 USB-C 포트가 탑재될 것이란 소식이 다시 한 번 발목을 잡고 말았다.

 

EU의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핸드폰 충전케이블을 통일한다는

가끔은 '요즘 세상에 이런 게 가능해?' 싶은 강제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보이는 EU에서 나온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용 중인 모든 기기들이 USB-C를 채택하고 있는데

유독 아이폰 만을 위해 늘 라이트닝 케이블을 챙겨야 하는게

주구장창이라 할 수는 없어도 때로 참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던 터라

포트가 바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폰 15를 기다려야겠단 결심을 하기는 충분했다.

그래, 오래 참았는데 몇 달 더 못 기다리겠나 하고 마음먹었다.

 

아이폰 15가 발표되고 출시되고

오래 참고 기다려서 모처럼 출시작 구입하는 건데 좀 좋은 걸로 가자 싶어

15 프로맥스로 결정하고 주문을 넣어 몇 주 기다려 배송받았다.

 

맥스 시리즈는 처음 써 보는데

크기와 무게에서 올 거라 짐작했던 부담보다는 큰 화면의 시원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훨씬 빠릿하고 부드러워진 동작과 훨씬 오래가는 배터리 등도 아주 맘에 들었다.

라이트닝을 박스에 넣어 장롱에 쳐넣고

기존에 있던 USB-C 케이블을 이용해 간단히 빠른 충전을 하는 것도 예상보다 기분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속으로 '유레카!' 를 외칠 만큼 기쁜 일이 있었는데

음감용 안드로이드폰에 쓰려고 아주 오래 전에 사 뒀던 소위 꼬다리 DAC이 우연찮게 눈에 들어왔고

'앗 이거 이제 아이폰에 쓸 수 있겠네?' 싶어

함께 서랍에 처박혀 있던 Sennheiser IE300과 함께 아이폰에 물려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들어 봤는데

 

우왕국...

 

안드로이드 폰에서, 또 Tidal을 이용해 들었을 때의 경험과 딱히 비교는 어렵지만

이 조합이 가장 좋아서라기 보다는

주력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인 아이폰을 통해 그런 음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조삼모사의 원숭이가 된 것같은 느낌도 없진 않으나

아이폰의 포트가 USB-C로 바뀜으로 해서

(꼬다리) DAC 등 주변기기를 이용해 한결 나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도 정말 큰 장점인 것같다.

산책할 때 음악듣는 일이 많은데

이젠 오른쪽 주머니에 아이폰 넣고 왼쪽 주머니에 이어폰 물린 안드로이드폰 넣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큰딸이 만들어 준 닭고기 패티 햄버거.

둘 다 호들갑을 떨며 먹을 정도로

평생 먹어 본 햄버거 - 맥도널드 버거킹 및 각종 수제 햄버거 포함 - 중 최고의 맛이었다.

2023.06.01. 목.

 

기즈모 채널에 최근 소개된 데논의 첫 블투 이어폰 C830NCW 이어폰이다.

어제 본 그 리뷰 중 기억에 남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졸면서 봐서 빠지거나 틀린 곳이 있을 수도 있다)

 

- 역사가 100년이 넘는 오디오 명가 데논의 첫 블루투스 이어폰이다.

- 코덱을 AAC와 SBC만 지원한다.

- 터치 컨트롤이 있고 앱은 없다.

- 음질이 좋다.

- 재생 6시간, 24시간이다.

- 노캔은 적당한 편이다.

- 가격은 22만원 선이다.

 

현재 음감용으로 사용 중인 블투 이어폰은

Devialet Gemini 와 Sennheiser MTW2 다.

둘 다 음질로는 한가닥씩 하는 것들이라

사실 데논의 첫 작품이 이들보다 뛰어난 음질을 선보일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가격도 한참 낮기 때문에 그저 그 급 중에서 적당한 품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언젠가 이 블로그에 한 번 썼듯이

저 두 제품으로 (음감용) 블투 이어폰 바꿈질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해 왔다.

 

금요일 오후 검색해 보니 마침 아마존에서 120유로 (16만원 가량)에 판매 중이었고

들어보고 맘에 안 들면 반품하잔 가벼운 생각으로 곧바로 주문했고 이튿날인 오늘 도착했다.

(프라임 회원이라 반품에 부담이 거의 없어 아마존을 애용한다)

 

 

케이스는 튼튼하게 생겼고 포장과 내용물 등은 평범하지만 준수하다.

다만 이어폰과 케이스 모두 완전방전된 채로 와서 좀 김샜다.

 

한 5분 충전 후 귀에 착용하고 (연결은 아주 쉽게 됐다) 즐겨 듣는 타이달 플레이리스트 (팝 위주)를 켰다.

 

와...

 

좋다.

 

막귀라서 햄볶아요 하는 사람인데

내 귀로 듣기엔 솔직히 기 사용 중인 제미니보다 오히려 듣기가 더 좋다.

저역이 빵빵하게 받쳐주는 가운데 딱히 어디가 빠진단 느낌도 없는데

무엇보다 고역 쪽이 귀가 아프지 않는 선에서 아주 찰랑찰랑한 것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첫 곡으로, (녹음 단계부터) 음질 면에서 그닥 좋지는 않은 Hit you where you live - Petra 를 들었는데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간 들었던 어떤 조합의 장비들보다도 음 분리도가 좋다고 느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목소리의 Kehlani 의 Altar 를 듣는데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음향기기로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랄까.

감미로운 음성이 머릿속 한가운데를 커다란 구슬처럼 차지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클래식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뭔가 좀 건조한 느낌이 들어서 듣다가 그냥 건너 뛰었다.

 

기즈모 아저씨는 고음질 코덱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고 하던데

어차피 가볍게 음악 들을 때는 늘 아이폰이라

그 이유로 가격이 낮아진 게 나로선 더 좋은 일이다 싶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테스트 삼아 구입해 본 건데 무척 맘에 들어 

당분간 아마 주력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노캔 이어폰과 헤드폰을 몇 개나 갖고 있긴 한데

그래도 좀 필요가 있을 것같아서 좀 저가형 노캔 헤드폰 하나 구입하려 찾아 보다가

앤커에서 나온 Q35가 좋은 평을 얻고 있는 걸 보고 구입 대기 목록에 올려 놓고 있었는데

한국 리뷰들이 대개 1년도 전에 나온 것들이라 후속은 없는 건가 싶어 조금 더 찾아보니

이름은 조금 달라도 Q45라는 모델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듯 

외국인들이 좋은 평으로 리뷰해논 것들이 눈에 띄었다.

 

전반적인 평가는

- 사운드가 좀 더 평탄해지고 해상력이 좋아졌다

- 디자인도 좀 변화가 있는데 좋은 쪽이다

- 가격에 비해 준수한 외관, 마감, 음질, 노캔수준이다

라는 걸로 모아졌다.

 

우연히 발견한 어느 리뷰에는 마침 30유로 할인 코드도 있어서

최저가가 150유로 (약 20만원)였지만 120유로로 낮아졌고

거기에 그간 쌓아온 아마존 포인트를 써서 총 55유로 (약 7만 5천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다.

 

구입한 날 마침 영db 님의 리뷰가 떴길래 보니

그간 한국 리뷰가 없었던 것이 아직 한국 출시 전이기 때문이었고

평가는 외국 리뷰들이 말하는 것과 대체로 비슷한 맥락이란 걸 알게 됐다.

 

내가 음질을 논할 깜냥은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내 귀에 좋게 들리는 장비를 선택하려는 쪽인지라

노캔이나 디자인 보다는 음질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인데

이 Q45는 아이폰에 연결해 처음 들을 때부터 '어 괜찮네?' 싶었다.

일단 해상력이 준수하고 저음이든 고음이든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저음은 적당히 박력있고 중음은 고르게 받쳐 주고 고음은 충분히 정교하다.

 

다만 '우와 좋다!' 싶은 정도까진 아닌 건 왠지 사운드가 좀 가벼운 또는 비는 느낌이 들어서다.

저음이 약한 것과는 다른데 뭐라 설명하기 좀 애매하지만

가장 가까운 비교는 '화소가 낮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선명한 사진' 정도일 것같다.

그럭저럭 괜찮은 원본사진에 포토샵 오토레벨이 과하지 않게 잘 들어간 느낌이랄까.

 

음량도 적당하다.

현재 조용한 방에서 아이폰 음량을 80 정도로 한 채 20분째 팝송을 듣고 있다.

개인차가 있겠으나 나로서는 최대음량으로는 조금 괴롭다.

그리고 최대음량으로 올렸을 때 좀 싼 느낌, 조금 텅텅거리는 느낌이 강해진다.

가격정보에서 오는 선입견일 지도 모른다.

 

노이즈 캔슬링도 꽤 좋아 보인다.

사무실이 도로가여서 창문을 열어 두면 줄기찬 통행소음이 꽤 성가신 편인데

앱에서 노캔을 2단계 정도로만 해도 그 소음을 말끔히 소거해 줬다.

 

물리버튼의 인터페이스도 편하다.

왼쪽에 전원/페어링 버튼과 주변음/보통/노캔 모드 전환 버튼이 있고

오른쪽에 시작/정지 버튼과 음량/곡전환 버튼이 있는데

헷갈릴 일도, 오작동할 일도 없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즐기고 활용할 만한 좋은 헤드폰이다.

'John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어 본 햄버거 중 최고  (0) 2023.06.03
Denon AH-C830NCW 블투 이어폰 간단평  (0) 2023.01.29
Final ZE3000 하루 사용 후기  (0) 2022.08.16
오랜 친구같은 피씨 스피커 Trust  (0) 2022.06.10
Bowers & Wilkins PI7 첫 소감  (0) 2022.01.14

흑림지대 (Schwarzwald / Black Forest) 는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휴가지이다.

아이들 여름방학 기간에 3박 4일 휴가를 냈고 

목적지는 올해도 흑림지대, 그 중에서 근처의 작은 도시 Durbach로 정했다.

우리 모두 뭔가 거창한 활동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호텔에서 편하게 쉬면서 예쁜 소도시, 동네 등을 구경하거나 간단한 트레킹 정도 즐기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이번 휴가도 대부분의 시간은 호텔에 머물면서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나는 사우나를, 아내는 모처럼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느긋한 3박 4일 일정 중의 백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셋째날의 방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오늘은 뭘 할까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12년 전에 흑림지대에서 어느 큰 폭포를 봤던 게 기억나서 검색해 봤더니

기억 속의 그 폭포는 거리가 꽤 되고 대신 과히 멀지 않은 곳에 눈길을 끄는 폭포가 있어

간단한 먹거리 마실거리 등을 챙겨 가벼운 차림으로 차를 타고 함께 나섰다.

그저 네이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갔을 뿐인데

흑림지대에 들어서자 꽤나 험준하고 좁은 도로를 몇 킬로나 달려야 했고

운전의 재미와 황홀한 경치가 마냥 좋았던 나와는 달리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난간도 없는 낭떠러지같은 길을 달리는 내내 때로는 비명을 지르며 조마조마해 했다.

물론 마냥 무서워한 것만은 아니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좋고도 불안한 느낌이었던 것같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중간 정도 반응들이었고.

 

도착하기도 전에 이렇게 즐거웠으나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우리 모두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산골에서 어린 날들을 보낸 나는 

마치 그 시절 기억 속의 지리산 계곡을 보는 듯한 풍광에 감동 비슷한 감정까지 가슴 속에 일렁였다.

울창한 숲, 시원한 바람, 재잘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조그마한 돌탑들까지.

아담한 돌탑 하나에 작은 돌 하나 얹고 싶어 신발을 벗고 잠시 그 맑은 물에 발을 담았을 때

맨발바닥을 자극하는 자갈모래와 약간은 미끄러운 자갈돌의 압박감이 무척 기분좋았고

이내 종아리까지 마비되는 듯한 한기가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익숙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몇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그 옆에 조성된 계단길들을 지나자 잔잔한 계곡물 옆으로 평탄하고 곧은 소로가 나타났고

그 길은 지금은 식당과 호텔 등으로 쓰이는 옛 수도원까지 이어져 있었다.

원하면 거기서 더 위로도 걸어갈 수 있는 것같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걷기가 아니었으므로

거기서 발길을 돌려 물과 나무와 새소리를 감상하며 천천히 돌아왔다.

 

 

 

 

 

https://www.schwarzwald-tourismus.info/attraktionen/allerheiligen-wasserfaelle-b9918d8834

 

 

 

'Foto > 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러고 놀았다  (0) 2020.10.09
모처럼의 획스트 (Frankfurt-Höchst)  (0) 2020.05.17
코로노을  (0) 2020.03.27
모처럼 축복이  (0) 2020.03.15
오랜만에 유치한 사진  (0) 2020.03.11

모 유튜브 채널에서 좋은 평으로 소개된 걸 보고 검색해 보니 아마존에서 120유로 (약 16만원) 하길래 주문

어제 받아서 들어 보았다.

비교군은 드비알레 제미니, 젠하이저 MTW2.

음질은 좋으나 다른 기능은 하나도 없는, 오직 음질에만 몰빵한 제품이라고 들었으므로

그리고 이런 기기를 구입함에 있어 나도 가장 관심가는 부분이 음질이므로

다른 것 신경쓸 것 없이 그저 음질에만 집중해 테스트해 보았다.

 

그런데 착용 후 이리저리 만지다 보니 하우징에 센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터치로 재생/정지 볼륨조절 등이 가능한 모양이었으나 별 관심이 없어 더 알아보진 않았다.

위의 그 리뷰에서도 아마 소개됐을 건데 띄엄띄엄 보느라 놓쳤나 보다.

 

평소에 음질을 확인할 때 듣는 몇 곡을 아이폰에서 재생하고 세 기기를 번갈아 가며 들어 보았다.

어차피 LDAC을 지원하는 기종은 없으므로 나름 공평한 비교였을 거다.

 

리뷰에서 좋은 평을 받았던 대로 역시 음질은 상당히 좋았다.

물론 내가 음질을 논하거나 귀로 들어오는 느낌을 상세히 풀어낼 만한 깜냥은 안 되나

음알못의 제한된 표현으로 묘사해 보자면

특정 음역대를 강조한단 느낌보다는 전 대역이 고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빵빵한 저음이라거나 시원한 고역이라고 할 특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전 대역이 고르게' 라고는 하지만 그게 드비알레 제미니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던 건

제미니는 헤드가 넓고 구멍이 아주 많은 샤워기가 많은 물줄기를 적당한 세기로 뿌려준다면

ZE3000은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구멍에서 좀 더 세차게 물이 뿜어 나오는 인상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로는 그 구멍이 한 아홉개 정도 되는 것같다)

 

그래서 그냥 반품을 결정했다.

만듦새도 좋고 착용감도 괜찮고 특히 음질 자체로 보면 꽤 만족할 수준이긴 한데

제미니와는 좀 다른 성격의 좋은 음질이긴 하지만 그게 제미니의 매력을 능가하는 수준은 아니고

제미니와 MTW2를 대체하거나 보강할 만큼 탁월하거나 특색이 강한 것도 아니어서다.

 

 

 

 

만나서 반가웠다.

청운의 꿈을 품고 아내와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데리고 독일에 온 지 햇수로 벌써 16년.

음질이나 음향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그 시절에도 음악듣기는 내 삶에 우선순위가 꽤 높았기에

집을 구하고 하나 둘 기본적인 세간살이가 들어찰 무렵 잠시 짬을 내어 전자상가를 찾았다.

 

그럴 듯한 오디오 시스템을 들일 여건은 안 되고

지금같으면 간단히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 사서 급한 대로 다용도로 쓸 수 있었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음악을 들으려면 컴퓨터에 적당한 피씨 스피커를 물리거나

거기에 mp3 플레이어 (아니면 워크맨/휴대용 시디 플레이어)를 연결해 듣는 게 일반적이었으므로

노트북이나 PDA (Dell사의 Axim)에 연결할 요량으로 피씨 스피커를 구입하기로 했다.

 

이름부터 전문적인 느낌이 물씬한 Expert라는 전자기기 전문점에 가니

눈이 휘둥그레지게 삐까뻔적한 수많은 오디오 기기들이 여기저기서 내 눈길을 잡아당겼다.

덩치가 커다란 것들은 애초 고려대상도 아니었으므로 애써 외면하면서 올망졸망 모여 있는 피씨 스피커 코너로 갔다.

오디오 문외한인 나에게도 익숙한 유명 브랜드 제품들의 외관과 가격과 스펙 등을 훑어보며 어슬렁거리던 중

뭔가 그럴듯하게 생겼는데 그 외관 치고는 가격이 무척 낮은 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중고였다.

이런 전문점에서 중고물건도 파나 싶어 신기해 하며 (나중에) 더 둘러봤는데 그 스피커는 거기서 유일한 중고였다.

당시 흔히들 쓰던 일체형이 아니라

고음용 컬럼 스피커 두 개와 저음용이 나뉘어 있고 전원/볼륨부도 따로 있는 모델이었다.

갖고 갔던 PDA를 연결해 들어 봤는데 뭔가 더 풍성한 소리가 나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킵해 두고 (중고 아닌) 다른 것들을 살펴보다가 좀 더 비싼 Logitech 제품 하나가 맘에 들어

거기 담당 직원에게 '음질 면에서 둘 중 어느 것을 추천하느냐' 물었더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시 중고제품을 가리켰다.

(물론 중고제품을 빨리 처리하고 싶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독일 정착 초기 당시 빠듯한 살림에 무려 30유로 남짓이나 하는 (34유로였던 듯) 스피커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16년 전엔 당연히 이 정도로 낡진 않았다
처음 구입 때부터 저 폰지 하나는 없었다
폰지가 세 개지만 아래 두 개는 훼이크. 소리는 가장 위엣것에서만 난다
큰 딸이 붙여줬던 스티커들과 사랑고백
삼성폰에 꼬다리 DAC 붙여 아마존뮤직 스트리밍

 

꽤 오랜 시간 잘 썼고

볼륨조작부에 접촉불량 문제가 있기도 하고 다른 스피커를 들이기도 해서 중간중간 총 2-3년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쓰려고 다시 꺼내 몇 달째 듣고 있다.

 

블루투스를 비롯 다른 스피커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안방 거실 할 것없이 거주공간 여기저기에 스피커가 한 두개 씩은 있다.

하지만 애초에 중고로 사서 이미 16년째 갖고 있는 이 스피커는

가끔 어디 구석에서 찬밥신세로 지내긴 했어도 버릴 마음은 참 안 든다.

독일생활을 함께 시작했고 독일에서 오로지 나를 위해 산 첫 물품이란 의미도 있겠으나

피씨 스피커 치고 음질이 꽤 괜찮다는 점도 이 부분적으로 고장난 스피커를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물론 요즘 나오는 본격 피씨파이용 스피커들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꽤 괜찮다 해 봤자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음질일 리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전원을 연결하면 '웅~' 하는 저역노이즈가 기본으로 깔리고

볼륨노브를 만지면 이쪽저쪽 스피커들에서 소리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아예 고정해 놓고 있고

고정해 뒀음에도 어느 순간 한쪽 스피커가 죽어있어 다시 한 번 이리저리 만져 줘야 하기도 하고

구입 때부터 찢어져 없어졌던 폰지 하나의 자리는 눈에 띌 때마다 신경이 쓰이지만

어디 좀 모자라고 몸이 불편하다 해도 오랜 친구와 연을 끊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인생의 후반 1/3을 함께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스피커를 계속 품고 있을 이유는 충분하다.

 

하필 지금 스피커에선 Sarah Cornor의 Vincent 란 곡이 흘러 나오고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노래. 힘든 사람을 위로하는 가사가 자못 감동적인데

내 스피커가 게이는 아니지만 괜히 그 감정에 대입된다.

 

지난 주에 Bowers & Wilkins PI5를 사서 들어보고 

처음부터 너무 좀 답답한 소리에 실망해서 당일로 반품했다.

그게 괜찮으면 상급기인 PI7로 올라가게 될 지도 모른단 불안감이 있었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제

최저가 검색 앱에 예전에 등록해 둔 PI7이 근래 6개월새 최저가로 갑자기 뜬 거다.

하아.... 잠시 고민하다가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란 옛 성현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구매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번에도 익일배송.

아마존 일 좀 하네.

 

박스 등 외형은 PI5와의 차이점을 모르겠고

LG V50에 연결하자 마자 바로 타이달에서 음악이 흘러나와 좀 놀라긴 했는데

여튼 새 기기를 사면 늘 가장 먼저 들어보는 내 나름의 레퍼런스인 Meco의 Star wars를 켰다.

어린 시절 꽤나 거창한 오디오 장비로 들었던 이 곡의 강렬한 인상을 얼마나 재현해 줄 수 있는가를 보는 건데

 

일단은 합격이다.

 

번갈아 가며 비교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Devialet Gemini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흥과 비슷한 것같다.

사실 그보다 낫길 기대했지만

그리고 기분 탓인지 조금은 나은 것같기도 하지만 너무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이미 블투이어폰 중 음질로는 시빗거리가 없는 젠하이저 MTW2와 제미니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좋긴 하지만 그들보다 탁월하달 수는 없는 이 녀석을 안고 가야 할 것인지

좀 더 들어 보면서 고민해 봐야겠다.

 

근데 생긴 게 너무 고급져서 소유욕이 좀 올라가는 게 문제네

 

 

 

위에 쓰고 이어서 한 30분 계속 음악 듣는 중인데

Mr. Big의 to be with you 를 듣다가 폴길버트의 통기타 간주가 나오는데 - 그렇다 나는 옛날 사람 -

갑자기 '아니 여기 기타 소리가 원래 이랬나?' 싶었다.

뭐랄까... 통기타 줄 세트로 새로 갈고 처음 치는 것같은 상쾌한 소리....?

여튼 이제껏 이 곡 그 부분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산뜻하고 시원한 소리가 났다.

 

오호... 이거... 괜찮은데...?

 

일요일인 어제 저녁에 주문

월요일인 오늘 오전에 도착.

아마존 일 하네.
 
들어봤다.
아이폰에도 LG V50에도.
그리고 반납결정했다.
 
처음부터 좀 먹먹한 느낌이 강했다.
저역 무척 빵빵한데 기대했던 소리와는 무척 거리가 멀었다.
맑고 선명한 가운데 전대역 고른 박진감을 기대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곡에 따라서는 고역대도 충분히 다가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소리가 답답했다.
5분 들어보고 바로 통에 넣었다.
반납이다.
159유로에 샀는데 더 떨어져도 안 살 거다.
아, 물론 그 가격이면 괜찮은 음질에 만듦새라 할 수 있지만
일단 기대했던 방향은 아니었고
이단 그 방향이라면 이미 좋은 음질을 내 주는 다른 기종을 보유 중이라 겹칠 필요는 없다.
 
PI7은 좀 다를까.
아,,, 고민된다 
 

'John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 친구같은 피씨 스피커 Trust  (0) 2022.06.10
Bowers & Wilkins PI7 첫 소감  (0) 2022.01.14
Bowers & Wilkins PI5 주문  (0) 2022.01.02
슈어 에이오닉 50 (Aonic 50) 이주일 사용 간단 후기  (0) 2021.12.11
연비에 대하여  (0) 2021.07.05

드비알레 제미니 (Devialet Gemini)를 끝으로 이제 블투 이어폰은 그만 사야겠다고 맘먹었었는데

만악의 근원 유튜브에서 우연찮게 관련 리뷰를 보고는

사운드 성향이 좀 다를 것같다는 기대와 자기 합리화가 뭉글뭉글 피어올라 그냥 주문해 버렸다.

 

 

실은 이것보다 PI7에 더 관심이 가는데

B&W 제품은 사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두 배인 PI7으로 직행하기 전에 우선 이걸로 분위기 파악을 좀 해 보고

만약 PI5가 맘에 들면 추후 PI7으로 갈아탈 요량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예상 망테크 : PI5 맘에 듬 --> PI7 구입, 맘에 듬 --> PX7 구입 --> 돌이킬 수 없는 길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