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림지대 (Schwarzwald / Black Forest) 는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휴가지이다.

아이들 여름방학 기간에 3박 4일 휴가를 냈고 

목적지는 올해도 흑림지대, 그 중에서 근처의 작은 도시 Durbach로 정했다.

우리 모두 뭔가 거창한 활동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호텔에서 편하게 쉬면서 예쁜 소도시, 동네 등을 구경하거나 간단한 트레킹 정도 즐기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이번 휴가도 대부분의 시간은 호텔에 머물면서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나는 사우나를, 아내는 모처럼 혼자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느긋한 3박 4일 일정 중의 백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셋째날의 방문이었다.

 

아침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오늘은 뭘 할까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12년 전에 흑림지대에서 어느 큰 폭포를 봤던 게 기억나서 검색해 봤더니

기억 속의 그 폭포는 거리가 꽤 되고 대신 과히 멀지 않은 곳에 눈길을 끄는 폭포가 있어

간단한 먹거리 마실거리 등을 챙겨 가벼운 차림으로 차를 타고 함께 나섰다.

그저 네이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갔을 뿐인데

흑림지대에 들어서자 꽤나 험준하고 좁은 도로를 몇 킬로나 달려야 했고

운전의 재미와 황홀한 경치가 마냥 좋았던 나와는 달리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난간도 없는 낭떠러지같은 길을 달리는 내내 때로는 비명을 지르며 조마조마해 했다.

물론 마냥 무서워한 것만은 아니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의 좋고도 불안한 느낌이었던 것같다.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중간 정도 반응들이었고.

 

도착하기도 전에 이렇게 즐거웠으나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우리 모두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산골에서 어린 날들을 보낸 나는 

마치 그 시절 기억 속의 지리산 계곡을 보는 듯한 풍광에 감동 비슷한 감정까지 가슴 속에 일렁였다.

울창한 숲, 시원한 바람, 재잘거리며 흐르는 계곡물,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조그마한 돌탑들까지.

아담한 돌탑 하나에 작은 돌 하나 얹고 싶어 신발을 벗고 잠시 그 맑은 물에 발을 담았을 때

맨발바닥을 자극하는 자갈모래와 약간은 미끄러운 자갈돌의 압박감이 무척 기분좋았고

이내 종아리까지 마비되는 듯한 한기가 꽤나 이색적이면서도 익숙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몇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그 옆에 조성된 계단길들을 지나자 잔잔한 계곡물 옆으로 평탄하고 곧은 소로가 나타났고

그 길은 지금은 식당과 호텔 등으로 쓰이는 옛 수도원까지 이어져 있었다.

원하면 거기서 더 위로도 걸어갈 수 있는 것같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걷기가 아니었으므로

거기서 발길을 돌려 물과 나무와 새소리를 감상하며 천천히 돌아왔다.

 

 

 

 

 

https://www.schwarzwald-tourismus.info/attraktionen/allerheiligen-wasserfaelle-b9918d8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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