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 딸 예진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문장이 아닐까 한다.
예진이는 정말 혼자서도 너무너무 잘 한다.
두살 반이 넘어서 들어간 유치원에서 얘가 익숙할 만큼 독일어를 익힐 때까지 아내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 전까진 집과 교회가 생활환경의 전부였기에 독일어를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가뜩이나 숫기없는 예진이가 유치원에서 적응하는 게 쉬웠을 리가 없다.
초반에는 유치원에 데리러 가 보면 늘 혼자 구석에 앉아 블록쌓기 놀이만 하고 있었고
어느 때인가는 집에 와서는 한국말도 독일말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내며 중얼거리길래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들으니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 새 언어를 배우는 거라고...
하여튼 비슷한 환경의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예진이도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유치원에 훌륭하게 적응해 냈다.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무렵엔 그 유치원에서 가장 활발하고 목소리 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약간의 동행과 연습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중반, 그러니까 만 아홉 살이 되기 전부터 예진이는 혼자 학교를 다녔다.
터덜터덜 걸어가면 되는 거리였느냐 하면 그게 아니고
버스 한 번에 가는 구간이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버스를 타고 트램으로 갈아타고 내려서 아이 걸음으로 1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위치였다.
중간에 큰 도로와 작은 도로도 한 번씩은 건너야 했다.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이 여정이 주는 압박은 모르긴 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예진이가 해냅니다.
초등학교에서 예진이의 생활은 훌륭했다.
각종 학과목 성적도 좋았을 뿐 아니라
암기력이 좋아서 연극연습을 할 때 친구들이 버벅거리는 부분을 자신이 다 가르쳐 주기도 했다.
상급학교인 김나지움으로의 진학을 앞뒀을 때 예진이는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선호하는 9년 과정 여학교를 제쳐 두고 8년 과정 남녀공학 학교를 선택했다.
그리고 진학상담 중 예진이의 담임선생은
예진이라면 그곳에서도 문제없이 잘 해 낼거라며 자신의 신뢰감을 보태 주었다.
성적표를 비롯한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드디어 면접을 보던 날
예진이는 동석한 아빠가 깜짝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잘 표현했다.
김나지움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곳이고
더구나 예진이가 선택한 학교는 그 과정을 8년에 마치는 일정이라 공부가 좀 빡센 편이다.
독일 학생들은 마냥 놀면서 편하게 공부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예진이를 보면 아직 상급생도 아닌데 툭하면 밤늦게까지 각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교육형편에 비할 바는 아니란 걸 알지만
그래도 막연하게 예상했던 바와는 좀 달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독일인이 대부분인 다른 친구들의 부모들을 보면 학부모 회의 같은 곳에서도 참 열심이고
자녀들이 김나지움 공부를 해 감에 있어 이런 저런 도움을 참 많이 주는 것같다.
가령 자녀가 어떤 과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담당 교사와 상담해서 해결책을 모색해 준다든지
어떤 교사에 대해 아이들의 불만이 모이는 것같으면 학부모들끼리 상의해서 교장에게 의견을 낸다든지
하다 못해 어떤 과목 숙제를 어려워하면 (이미 그 과정을 거쳤을) 부모가 직접 도와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독일어가 어려운 예진이의 부모는
다른 학부모들이 하는 그런 식의 도움은 거의 못 주는 게 안타깝고 미안한 현실이다.
부모는 그래도 나름의 방식으로 예진이의 중압감을 덜어주려 노력하지만
다른 부모와 비교해 미진한 부분이 눈에 보일 수 밖에 없는 예진이로서는 엄마빠에 대한 원망이 없을 리가 없다.
그래도 평소엔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러나 활발하게 학교생활을 해 내고 있다.
한 마디로
예진이의 학교 생활에 있어 부모인 우리가 도움이 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예진이는 부모의 뒷받침이 든든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꿀릴 것 없이 훌륭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꿀리긴 커녕 어떤 면에선 학급 친구들보다 우수한 결과를 갖고올 때도 많다.
지난 12월 말
학기 종합성적표를 받아들고 와서 자신의 우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훌쩍이던 예진이
그저께
최근 있었던 독일어 시험에서 자기가 반 최고점을 받았다며 기뻐 울먹이던 예진이.
좋은 성적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걸 넘어 감정이 북받쳐 하는 예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입장에서
다른 부모들처럼 도와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만큼, 때로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해내는 예진이가 대견할 따름이다.
사춘기에다 몰려드는 학업의 압박으로 심신이 힘든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지만
많은 시간 쾌활하고 잘 웃고 또 자기 시간을 잘 구분해 할 일은 해 내는 예진이를 보면
어떻게 저런 아이가 내 딸로 태어났을까 싶어 신기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다.
나는 딸바보다.